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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전주의 역사와 정신이 숨 쉬는 안골노인복지관(2014-12-03) > 언론 속 안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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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전주의 역사와 정신이 숨 쉬는 안골노인복지관(2014-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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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898회 작성일 14-12-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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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시 인후동 소재 안골노인복지관에서는 지난 10월 14일부터 오늘 12월 16일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전주의 역사’를 주제로 ‘온·다라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있다. ‘온·다라 인문학’ 강좌는 전주대학교 인문과학종합연구소와 전주시청이 ‘2014 인문도시지원사업’ 3년 과제에 선정되어 진행되고 있는 강좌이다. 여기서 ‘온·다라’는 전주의 명칭을 순우리말로 표현한 것으로서 ‘완전하고, 순결하며, 잘 갖추어지고, 조화를 이룬 산과 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12월 2일 안골노인복지관에서는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인 이재운 교수의 ‘전주가 자랑스러운 이유’라는 인문강좌가 진행되었다. 영하를 밑도는 차가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60세 이상 노년층 수강자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강의와 적극적인 응답이 이어졌다. 안골노인복지관의 인문강좌는 이처럼 뜨겁고 집중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재운 교수는 한국이 약소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주족이나 거란족과 달리 거대한 중국에 복속되지 않은 독자적인 국가 체제를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가 ‘정치나 군사의 힘’이 아닌 ‘문화의 힘’에 있었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기록문화’로서 조선왕조실록은 그 중 압권에 해당한다. 어떤 왕들도 사관들의 실록 기록에 관여할 수 없었고, 해당 왕이 승하한 후에야 실록청이 만들어졌으며 좌의정 책임 하에 여러 차례 수정되었고, 또 기록에 채택되지 않은 사료들은 세검정에서 세초하였으므로 임금은 정사를 폄에 있어서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늘 염두에 두고 공정하게 정사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재운 교수는 전주가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에 보존되었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목숨을 걸고 지켜냄으로써 조선의 역사를 지킨 사실을 강조하였다. 전주의 관리들과 강직한 선비들이 힘을 합하여 지켜낸 조선왕조실록은 내장사 동굴에 일시 보관되었다가 강화도, 묘향산을 거쳐서 무주 적상산 사고에 보존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조선과 조선의 역사를 굳건히 지켜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곧 한국의 문화적 힘의 바탕과 근원이 바로 ‘전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10월 14일에 있었던 ‘조선 건국과 전주 정신’이라는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의 개강 강의부터 이미 전주 정신의 위대함이 강의된 바 있다. 전주는 후백제의 왕도였고, 조선 태조의 본향으로서의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전주는 늘 문화적·정신적 수도의 역할을 자임해 왔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곡창과 왕조실록 및 어진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정치적 수도가 혹시 잘못된 길을 걸을 때 전주는 늘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였다. 신분제의 극복을 주창한 정여립의 대동사상이나 평등, 자주, 관민상화의 기치를 드높였던 동학농민혁명군의 정신이 전주에서 살아 움직이게 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11월 25일에 있었던 ‘후백제와 조선 건국의 연계성’ 강의를 맡았던 전주대 송화섭 교수는 견훤이 후백제를 전주에 도읍하지 않았더라면 조선 건국도 있을 수 없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전했다. 견훤은 사실 7년간이나 광주에서 도읍을 세우려 하였으나 그들의 완강한 저항과 보수적 의식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반면 전주는 훌륭한 영웅에 대해 개방적이었고, 미래지향적인 ‘미륵사상’을 지니고 있어 견훤이 비로소 왕도를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후백제 왕조를 세운 지도 세력들은 당연히 매우 우수한 인재였을 것이다. 이들 세력은 결국 조선 왕조의 산파 역할을 자임하게 된이다. 이성계의 조상들이 단지 전주 출신이었기 때문에 전주가 ‘풍패지향’이 될 것이 아니라, 전주에 새로운 나라를 세울 만한 우수한 인재들이 무수히 모여 있었고 이성계가 왕이 되는 것을 적극 지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정당성을 전주 지역의 지도자들이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비로소 조선이 건국될 수 있었다는 송 교수의 지적은 매우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처럼 안골노인복지관에서는 현재 ‘온·다라 인문학 인문강좌’가 8강까지 진행된 가운데 자랑스러운 전주의 역사와 정신을 전주 시민들에게 전파하고 뿌리내리는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나인구<안골행복드리미 기자단 편집장>  <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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